- 등록일202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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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개신교는 ‘믿음으로 의화(義化)한다.’라는 데에는 견해가 일치합니다.
그렇지만
▶ 가톨릭에서는
--> 의화를 통한 인간의 실제적인 내적 변화가 발생하여 성화(聖化)되고 쇄신(刷新)된다고 보는데,
▶ 개신교에서는
--> 하느님께서 인간의 신앙에 의해 의롭다고 칭하시는 ‘수동적 의화’를 주장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의화에 대한 교리상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의화(義化)의 정의
① 가톨릭
[트렌토 공의회 제6차 회기의 『의화교령』 <제8장> · 인간은 믿음을 통해서 (로마3.28), 그리고 무상으로(로마3.24) 의화한다고 사도(바오로)가 말했는데, 이 말은 가톨릭 교회가 옹호하며 표명해 온 항구하고 일치된 견해로 이해되어야 한다. · 즉, 우리는 믿음으로 의화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인간 구원의 시작이요, 온갖 의화의 기본이며 뿌리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믿음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기 때문이고’(히브 11.6), 그분의 자녀로서 그분과 친교를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2베드 1.4). · 또한 우리는 무상으로 의화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화에 앞서 그 어떤 것도, 믿음이나 행업도 이 의화 은총을 얻는 전제 조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화교령』 법규 제1조 · “만일 누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로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 없이 인간 본성의 힘으로 행하거나 법의 가르침에 힘입어 행한 자신의 선행만으로 하느님 앞에서 의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
② 개신교
<마르틴 루터> · ‘하느님의 정의‘를 수동적 정의로 받아들여 “하느님의 엄한 무자비함으로 불쌍한 죄인에게 엄격한 심판을 내리는 그러한 재판관적인 정의가 아니라 하느님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속죄 희생 때문에 순수한 자비에서 죄진 신앙인을 자비롭게 바라봄으로써 ‘의인’으로 만드는 은총의 정의”라고 이해하고 ·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그 노력이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믿음에 의해서 의롭게 하신다는 해석 · 즉, 하느님의 의로움이란 ‘능동적 정의’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신앙에 의해 인간을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칭하시는 ‘수동적 정의’를 의미 · 다시 말해서 인간은 여전히 죄인으로 남아 있지만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간주해 주심이 바로 의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수동적 정의 |
2. 의화를 통한 인간의 실제적인 내적 변화
① 가톨릭
『의화교령』 <제4장> · “죄인의 의화”는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된다. · 죄인의 의화란 인간이 첫 아담의 자녀로 태어난 상태에서 두 번째 아담이신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총의 지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지위(로마8.23)로 옮겨가는 것이다. 『의화교령』 <제7장> · “의화는 단순히 죄의 사함뿐만 아니라, 은총과 그에 동반되는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인간 내면이 성화되고 쇄신되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럼으로써 인간은 부정한 존재에서 의로운 자가 되고 원수에서 친구로 변화된다. · 그렇게 인간은 상속자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희망할 수 있게 된다.’(티토 3.7)” |
② 개신교
· 루터는 의화를 하느님께서 죄 많은 인간을 그저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 인간은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으로 이해하였으며, · 의화 과정에서 인간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다. |
3. 의화의 구체적 결실과 열매로서의 ‘선행’과 ‘공로’
① 가톨릭
『의화교령』 <제16장> · 끝까지 선하게 행동하는 사람들과(마태 10.22)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으로 하느님의 자녀에게 자비롭게 약속된 은총과 하느님 바로 당신께서 하신 약속에 따라 그들의 선행과 공로에 신실하게 부여해야 할 상급인 영원한 생명이 주어져야 한다. (..중략..) · 예수 그리스도 바로 당신께서 지체들의 머리로서, 그리고 가지들을 위한 포도나무로서(요한 15.1) 의화한 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당신의 능력을 주입해 주신다. · 그분의 능력은 그들의 선행을 이끌고 동반하며 또한 뒤따르는데, 그 능력 없이 선행만으로는 결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거나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없다.(영원한 생명이 하느님의 은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행과 공로에 대한 상급이라는 측면도 있음을 제시) 『의화교령』 법규 제26조 · “만일 누가 의인들은 옳은 일을 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도(마태 10.22, 24.13) 하느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지는 영원한 상급을 하느님 안에서 행한 선행(요한 3.21)의 보상으로 하느님께 기대하고 바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008항 ·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공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 은총에 협력하도록 자유로이 안배하셨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 하느님의 어버이다운 활동은 인간을 감도하심으로써 시작되며, 반면에 협력을 통한 인간의 자유로운 행실은 그 뒤를 잇는 것이다. · 따라서 선행의 공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은총으로 돌려야 하고, 그다음으로 신앙인에게 돌려야 한다. · 실제로 인간의 공로 자체도 당연히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데, 인간의 선행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주도와 도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② 개신교
· 의화의 구체적 결실인 선행과 공로를 통한 구원을 부정하고 · 오로지 믿음에 따른 하느님의 선물인 은총에 따라 의로움으로 인정받는다고 주장 |
4. 인간의 의화에 대해 인용하는 성경 말씀
① 가톨릭
<로마서> 1.17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마태오복음> 7.21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5.45-4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야고보 서간> 2.14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2.17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칠 때에 실천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24 여러분도 보다시피,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 2.25 마찬가지로 창녀 라합도 심부름꾼들을 맞아들이고 또 그들을 다른 길로 내보냈을 때에 실천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26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갈라티아서> 5.6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
② 개신교
<로마서> 1.17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
<박준양 신부 저 '은총론, 그 고귀한 선물에 관하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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